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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指定:典籍】本村家「報本」碑
〔もとむらけ「ほうほん」ひ〕
この「報本」碑の書は、尚泰王時代の三司官向有恒(宜湾親方朝保)が、一門(向裔氏)である下地頭職向朝祥(本村朝祥・在任1851~76年)に贈ったものである。
この碑がどこで造られ、どこで彫刻されたか明らかでない。碑は直方体の石材を用い、右上より「同治甲子仲冬穀旦、向朝祥敬建、報本、向有恒書」の文字が刻み込まれている。「報本」とは「本に報いる」の意であるが、報いる対象が向裔氏の本家だったのか、それとも王府に対するものだったのか定かでない。
旧藩末期、宮古に於いては上下をゆさぶる「割重穀事件」(1848年)や「讒書事件」(1860年)等がおきた。「割重穀事件」とは10数ヶ村の役人が、私腹を肥やすため人頭税を割重みした事件であり、「讒書事件」とは王府の施政を非難した薩摩藩への訴状が王府に知れ、そのため20数名の有識者が拷問を受けた事件である。「割重穀事件」で朝祥は取り調べ側、「讒書事件」では容疑者の一人として事件にかかわっている。
この「報本」碑は上記の事件等に直接関係はないとおもわれるが、見る人に廃藩前夜の宮古の世情を想起させてくれる貴重な金石文である。
【Designated by the City:Classical Literature】Hohonhi Monument of Motomura Family
The inscribed words in this monument were presented to a member of the Shoei-uji clan, Chosho (Chosho Motomura, in office from 1851 to 1876), who was to be the chief of Shimoji, by Giwan Uekata Choho, who was one of the three Sanshikan Shoyuko during the rule of King Sho Tai.
It is not clear where this monument was made or inscribed. The monument is made from a solid, rectangular stone, and from the top-right are inscriptions that read: 同治甲子仲冬穀旦、向朝祥敬建、報本、向有恒書.
The word Hohon can be defined as “repaying one’s roots,” but here, it is not clear whether the subject of repayment is meant to be the head of the Shoei-uji clan, or the king and the government.
In the past, during the Bakumatsu period, tumultuous events such as the Warikasamikoku Incident (1848), Zansho Incident (1860) and others took place in Miyako. In the Warikasamikoku Incident, officials from over ten villages imposed greater head taxes for their own personal fortunes. The Zansho Incident saw the tortures of over 20 key figures, after the Ryukyu government learned that these figures criticized the policies of the government and appealed their complaints to the Satsuma Clan. During the Warikasamikoku Incident, Chosho was on the investigative side, while in the Zansho Incident, he was involved as one of the suspects.
The inscribed Hohon on the monument is believed to not have direct connections to the abovementioned incidents, but it is an important epigraph to give the observer a reminder of how the society of Miyako was in the eve of the annexation of the Ryukyu Kingdom.
【市指定:典籍】本村家「報本」碑
這塊「報本」碑上的碑文是尚泰王時代的三司官向有恒(宜灣親方朝保),贈送給一門同族(向裔氏)的下地頭職向朝祥(本村朝祥・在任1851~76年)的禮物。這塊碑在何處建造和彫刻並不明瞭。
碑身使用直方形的石材,右上方刻有「同治甲子仲冬穀旦、向朝祥敬建、報本、向有恒書」等文字。
「報本」意思是「回報於本」,回報的對象是向裔氏的本家,或是王府還不清楚。
舊番末期,在宮古先後發生了震動上下的「割重穀事件」(1848年)和「讒書事件」(1860年)。「割重穀事件」是10幾個村的官員,為了中飽私囊而多收人頭稅的事件。「讒書事件」則是批判王府的施政而向薩摩番告狀一事,被王府得知,為此20多名有識之士遭到拷問的事件。「割重穀事件」中,朝祥是審訊人,而在「讒書事件」中,卻成為了參與事件的嫌疑犯之一。
這塊「報本」碑,雖然與上述事件沒有直接的關係,但看過此碑的人,會聯想起廢番前夜宮古的世情,是一篇非常珍貴的金石文。
【미야코지마시 지정:서적】모토무라 일가 “호혼” 비
이 “호혼(報本)”의 비의 석문은, 쇼타이 왕 시대의 삼사관인 쇼 유코(기완 왜카타 조호)가 일족(쇼에이 씨)이었던 시모지 마을 촌장 쇼 조쇼(모토무라 조쇼, 재임 1851-76년)에게 보낸 것이다. 이 비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비석은 직육면체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오른쪽에 위로부터 “同治甲子仲冬穀旦、向朝祥敬建、報本、向有恒書”라고 새겨져 있다.
“호혼”이란 “서책에 보답한다”는 뜻이지만 보답하는 상대가 쇼에이 씨의 본가였는지 아니면 왕부王府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막부 말기에 미야코에서는 세상을 뒤흔든 “수확 사건”(1848년)과 “참서 사건”(1860년) 이 발생했다. “수확 사건”이란 열 몇개의 마을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인두세를 실제보다 더 많이 청구한 사건이다. “참서 사건”이란 왕부의 시정을 비난한 사쓰마에의 소장이 왕부에 발각되어 20여명의 유지들이 고문을 받았던 사건이다. “수확 사건”에서 조쇼는 취조하는 측이었고, “참서 사건”에서는 용의자의 한 명이었다.
이 “호혼” 비는 위의 사건 등과 직접적 관계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사람들에게 막부 말기 미야코 정세를 상기시키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生涯学習部 生涯学習振興課
電話:0980-72-3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