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s/smartphone_base.css /css/smartphone_content.css /css/smartphone_block.css /css/smartphone_side.css

トップ > 市の組織 > 教育委員会 > 生涯学習部 > 生涯学習振興課 > 【市指定:史跡】下地仁屋利社の墓碑

【市指定:史跡】下地仁屋利社の墓碑

〔しもじみーやりしゃのぼひ〕

1879(明治12)年、廃藩置県当時、旧藩吏を中心としたはげしい反対のなかで、政府に協力した下地仁屋利社は、群衆に殺された。遺体は腰原嶺のアブに捨てられたが、警視派出所員の手によって、那覇の護国寺に葬られたという。世にいうサンシー事件であるが、利社が新時代にいち早く賛成したことでサンシー事件とよばれたようである。
碑文によれば利社は7月8日警視派出所につとめ、わずか2週間後の22日に殺された。1921(大正10)年、利社の弟利及が西仲宗根東上原の一族の墓に改葬、墓碑は下里の生家の門脇に立てられていた。
宮古の近代をつげるころの世相ならびに郡民の動向を知るうえで、貴重な墓碑である。

【Designated by the City:Historic Site】Gravestone of Shimoji-Miya-Risha

In 1879, at the time of the abolishment of feudal domain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prefecture, there were strong protests centered around the officials from the former government. Shimoji-Miya-Risha was killed by the crowd for cooperating with the governmtent. It is said that the body was discarded at the Tsuzupisuki cave, however, it was recovered and taken to the Gokoku Temple in Naha by the members of the police dispatched here. This is referred to as the Sanshi Incident, with the name derived from how Risha was one of the first to agree to proceed to a new era.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Risha went on duty at the dispatched police staion on July 8, and on the 22nd, only two weeks after, he was killed. In 1921, Risha’s younger brother, Rikyu, reburied him in the tomb of the clan in Nishinakasone Higashi-Uehara, and the gravestone was erected at the house where he was born, in Shimozato.
This is an important gravestone which allows us to understand the society of Miyako as it entered the modern age, and the actions of the people.

【市指定:史跡】下地仁屋利社的墓碑

1879年(明治12年)廢藩置縣的當時,下地仁屋利社在以舊藩吏為中心的強烈反對下,因為協助政府而被民眾殺害,遺體被扔到了腰原嶺的水坑裡,後來經警視派出所的成員,將其遺體埋葬在那霸的護國寺,這就是一般所說的「贊成事件」。利社最早贊成了新時代的到來,所以,該事件被叫作贊成事件。
根據碑文記載,7月8日他就職於警視派出所,僅在2週後的22日就被殺了。1921年(大正10年),利社的弟弟利及將其遺體改葬到西仲宗根東上原一族的墳墓中,並在下里的出生地門旁立下了墓碑。
這塊墓碑對於瞭解近代的宮古,對外宣告當時的社會局勢和郡民動向極為珍貴。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시모지 미야 리샤의 묘비

1879년 번藩체제를 폐지하고 현県을 배치했을 당시, 막부관리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가 전개되던 상황에서, 정부에 협조한 시모지 미야 리샤는 군중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시체는 쓰즈피스키의 동굴에 버려졌으나, 파출소 직원이 나하의 고코쿠사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소위 “산시(찬성) 사건”인데, 리샤가 발빠르게 찬성했기 때문에 산시 사건이라고 불리게 된 듯 하다. 비문에는, 리샤는 7월 8일부터 경찰 파출소에 근무하다가 불과 2주일 후인 22일에 살해당했다고 쓰여 있다.
1921년 리샤의 남동생인 리큐가 니시나카소네 히가시우에하라의 일족의 묘를 이장하여, 묘비는 시모자토의 생가 옆에 세워졌다.
미야코에 근대의 파도가 일기 시작할 즈음의 사정과 군민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묘비이다.

お問い合わせ先

生涯学習部 生涯学習振興課
電話:0980-72-3764